심각한 위기에 처한 부부관계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남녀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겪는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위기를 겪는 부부들에게 갈등이 없는 행복한 부부생활이 아니라, 성숙하고 만족스러운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갈등과 차이점들을 적절하게 대처하며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글에서는 하빌 핸드릭스가 제시한 결혼과정의 4단계인 낭만적 사랑, 낭만 상실, 권력 투쟁, 안정과 헌신의 단계를 알아보고, 존 고트만이 제시한 행복한 부부의 유형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현재 갈등가운데 있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격려를 주고자 합니다.
낭만적 사랑의 단계
하빌 핸드릭스(Harville Hendrix)는 우리가 배우자와 사랑에 빠진 이유는 감정 두뇌가 배우자와 부모를 같은 사람으로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보통 부부들이 경험하는 결혼의 과정을 4단계로 제시합니다. 첫째, 낭만적 사랑의 단계입니다. 핸드릭스 박사는 낭만적 사랑을 자연적 무감각증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과 사랑의 관계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해지기 때문입니다. 낭만적 사랑은 화학적 반응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페닐 에틸라민(phenyl ethylamine) 또는 PEA라는 화학물질이 우리의 뇌를 이완시키면서 감정을 유쾌하고 안락하게 하여 행복감에 젖게 만든다고 합니다. PEA는 자연적 앰피타민으로 우리 뇌의 감정 중심부를 장악하여 기분을 안락하게 만듭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앰피타민은 사랑의 대상이 존재할 때에 생긴다는 것입니다. 뇌는 대략 2년 동안 PEA를 보유하고 있어, 낭만적 사랑은 시작과 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낭만의 단계는 마음에 맞는 남녀가 서로를 바라볼 때 첫눈에 반하는 단계이다. 이 사람만 있으면 나의 자아는 완벽해질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습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마치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지면서 편안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 전부터 함께 알아 온 것 같은 감동이 마음속에 일어나면서 마치 운명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처음의 매력과 열정의 강도가 그대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시간의 지나고 교제가 깊어 질수록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함께 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서로를 지배하면서 마치 세상을 얻은 것처럼 든든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매혹의 단계에서는 부부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가운데 이들은 일종의 신비스런 경험을 하며 황홀경과 소속감을 느낍니다.
낭만 상실의 단계
부부는 강렬한 심리적 일치감을 경험했던 시기를 지나, 심리적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전까지 내 마음에 가득했던 주고 싶은 마음이 받고 싶은 마음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중심이 베푸는 마음에서 받고 싶은 자기중심적인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세월이 흘러갈수록 자기중심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이때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기고 긴장감이 생기며 서로 다른 습관과 차이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며, 예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했던 부정적인 모습이 보이고, 상대방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부부는 서로에게 상실감을 맛보며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습니다. 우선 배우자가 “왜 그렇게 행동할까?”에 대한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다음 배우자의 행동에 대하여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며 부인하게 됩니다. 다음은 심한 분노의 단계로 배우자가 어떤 싫은 행동을 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필요한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분노합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과거처럼 행동하도록 강압적인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들이 효과가 없을 때 슬픔의 단계 또는 절망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 순간부터 부부는 이혼으로 깨어지기도 하고 평행선과 같은 냉전의 삶을 살기도 하고 또는 계속 싸움을 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다음은 핸드릭스 자신의 사례입니다. “나는 결혼 초기, 신혼여행 둘째 날부터 이 같은 경험을 하였다. 그날 우리는 함께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나는 물 위에 떠다니는 나무를 쿡쿡 찔렀고, 아내는 나보다 60-70미터 앞에 떨어져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개를 찾느라 열심이었다. 나는 문득 앞을 흘끗 쳐다보다가 태양에 비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그날 아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아내는 내게 등을 지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반바지에 빨간색 티를 입었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머리는 바람에 나부꼈다. 나는 아내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아내의 어깨가 약간 쳐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는 심함 불안에 휩싸였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내가 결혼을 잘못했구나 하는 고약하고 맥 빠지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어서 차를 타고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려야 했다. 내가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아내가 나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간신히 정신이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손을 흔들며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까지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의 이마고 치료를 통해 분주하게 일하는 엄마를 떠올릴 수 있었다. 엄마는 등을 지고 서 있었다. 나는 아홉째 아들인데다, 엄마는 요리와 청소를 하며 하루에 네다섯 시간을 부엌에서 보내야 했다. 내 눈에는 엄마의 등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스토브 앞에 서 있는 엄마는 얇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앞치마 끈으로 허리를 둘렀다. 엄마는 피곤하고 우울해 보였으며, 어깨는 처져 있었다. 어른의 시각으로 바라보니, 엄마에게는 나에게 베풀어줄 만한 육체적, 정서적인 에너지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빠가 머리를 다친 지 몇 달 만에 돌아가셔서, 엄마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우글우글한 집에 몇 푼 남지 않은 돈으로 살길을 걱정하며 비탄에 잠긴 채 혼자 남겨졌다. 엄마는 짊어지고 가야 할 걱정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나를 건성으로 돌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마음에 불안의 원인이 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분주한 엄마로 인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를 소리쳐 불렀지만,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정신과 병원에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 뜻밖에도 두 번째 사실을 깨달았다. 신혼여행 중이던 그 날, 내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 앞에 일찍이 떨어져서 자기 일에 몰두하던 아내, 엄마와 똑같이 어깨가 구부정한 아내를 보았을 때, 나는 섬뜩하게 내 결혼이 지친 엄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반복이 되리라는 걸 예감했다. 나는 이 사실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버거워서 상상의 막을 얼른 내려버렸다.”
권력 투쟁의 단계
이것은 대부분의 부부에게 친숙한 관계 형태입니다. 그들은 배우자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여가를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등 강압적인 방법을 활용합니다. 어떤 부부는 친밀감을 찾지만 어떤 부부는 각자 거리로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좌절만이 남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삶이 무너지면서 죽을 것 같은 존재의 소멸감과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더욱 더 집요하게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부정적으로 접근합니다. 어릴 때는 자신의 욕구를 울음으로 해결하였지만 어른이 되면 울음대신 끝없는 요구, 간청, 협박, 술, 도박, 마약, 종교, 자살 등으로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부정적으로 접근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여 그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아무리 기대하고 싸워보아도 여전히 변하지 않거나 변할 수 없는 상대방을 보며, “저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그의 단점을 수용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사랑받을 수 있는 모든 소망이 사라지면서 관계에서 절망과 죽음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이 지점까지 와도 부부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체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기대를 가지고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가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게 될 때마다 상대방은 멀게 느끼며 그를 배척하게 됩니다. 이때는 서로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자기만의 성에 들어갑니다.
안정과 헌신의 단계
권력 투쟁을 지나면서 부부는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는 안정된 단계에 도달합니다. 이들은 더 나은 의사소통 기술을 개발하고 갈등을 더 건설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는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데 중점을 둡니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에 대한 헌신을 깊이 하고, 개인 성장과 상호 지원에 중점을 둡니다. 이들은 공동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고, 감정적 유대를 강화합니다. 이 단계는 깊은 파트너십과 공유된 목적 의식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 단계를 이해하게 되면 부부는 결혼의 복잡성을 헤쳐나가면서 더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존 고트만은 행복한 부부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유형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부부의 대화를 살펴보면 긍정성과 부정성의 비율은 5:1정도라는 것입니다. 즉 행복한 부부는 긍정적인 말을 다섯 번 하면 부정적인 말을 한번 정도한다는 것이죠. 행복한 부부 첫번째 유형은 아주 감성적이고 격하기 쉬운(volatile) 민감한 부부들입니다. 이는 의견의 충돌이 잦고 작은 일들도 한번은 꼭 집고 넘어가야만 하는 부부들이죠. 상호 자기의 입장을 설득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부부이며 이런 부부들은 서로 서로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마음에 표현되지 않은 감정을 품고 살지 않는 부부들입니다. 충돌도 잦지만, 애정의 표현도 많이 하고, 서로 상대방을 잘 놀리는 부부들입니다. 이런 부부들은 철벽쌓기를 거의 하지 않으며 낭만적이고 질투가 강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행복한 부부 유형은 인정하는(validating)부부입니다. 감성의 정도로 보면 중간쯤 되는 부부들입니다. 부부가 함께 이야기할 일이 생기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며, 심사숙고한 후에라야 토론을 하고, 토론이 끝날쯤에는 희지부지해지는 부부들입니다. 무엇이든지 중간쯤, 절충해서 말하는 부부들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충돌 회피적 (conflict-avoiding) 부부입니다. 감성의 정도로 비교하면 무딘 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의견의 충돌이 거의 없습니다. 부부가 상호 의견이 달라도 괜찮다는 것을 합의 본 부부들이며 서로 설득시켜야 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 자체의 중요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낙천적 부부입니다. 부부관계의 좋은 점들을 강조하는 부부입니다. 어떠한 한가지 유형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 부부들이 대화할 때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보다 5배 정도 많다는 것입니다.